PayPal은 지난 5월 5일 Q1 어닝스콜에서 이례적으로 솔직한 발언을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기술 회사가 되어야 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전 선언이 아니었다. 페이팔이 AI 코딩 도입에서 업계 흐름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는 공개 시인이었다. 스포티파이가 올 2월, 최상위 개발자들이 12월 이후 코드를 단 한 줄도 직접 쓰지 않았다고 밝힌 시점에서, 2026년 5월에야 'AI 개발 프로세스 공격적 도입'을 선언하는 건 명백한 시차다. 업계에서는 내부 AI 토큰 소비량을 혁신 속도의 경쟁 지표로 삼는 '토큰맥싱'이 이미 일상화됐고, 페이팔은 그 레이스에서 지금 막 출발선에 섰다.
회사가 제시한 전략은 세 축으로 구성된다.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 개발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AI 도입, 그리고 고객 서비스·서포트 운영·리스크 관리까지 아우르는 비개발 영역의 AI 확장이다. 실행 조직으로는 최고경영진 직속 'AI 전환 및 간소화' 팀을 새로 만들었다. 이 팀의 임무는 기능 단위·프로세스 단위로 기존 운영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것이라고 회사는 강조했다. 단순히 새 기술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핵심 프로세스 자체를 재구성해야 비로소 의미 있는 절감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파일럿은 이미 여럿 진행했고,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회사 측은 덧붙였다.
그러나 이 발표와 함께 나온 다른 뉴스가 전략의 결을 복잡하게 만든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페이팔은 향후 2~3년 안에 전체 인력의 약 20%, 4,500명 이상을 감원할 계획이다. 회사는 AI 도입과 구조조정을 묶어 최소 15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절감액이 어디서 오는지다. AI 기반 효율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대규모 감원의 직접 효과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AI 전환이 생산성 향상의 수단인 동시에 감원의 명분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은 이 발표가 피하지 못하는 그림자다.
페이팔의 재무 상태는 전환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준다. Q1 매출은 84억 달러로 전년 대비 7% 성장했지만, Q2 가이던스가 예상을 밑돌며 발표 직후 주가가 하락했다. 2021년 고점 대비 이미 80% 이상 빠진 주가는 팬데믹 이후 장기 침체의 자국이다. 비즈니스는 체크아웃/페이팔, 소비자 금융서비스(벤모), 결제 서비스/크립토 세 세그먼트로 재편됐다. 경영진이 벤모 매각 가능성에 대해 '주주 가치 극대화가 최우선'이라고만 답한 것도 눈길을 끈다. '기술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 실질적 전환의 시작인지, 아니면 구조조정의 새 포장지인지는 앞으로 2~3년의 숫자가 판가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