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가 발표한 첫 회칙 《Magnifica Humanitas》를 AI 정책 문서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200페이지에 걸쳐 교황이 실제로 해부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오래된 권력 구조다. 불평등, 전쟁, 민주주의 침식, 그리고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할 수 있는 소수 엘리트의 존재. AI는 그 문제들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증폭시켰다.
문서 발표 현장에 앤트로픽 공동창업자 크리스 올라가 자리했다는 것 자체가 이 회칙의 성격을 드러낸다. 교황은 특정 기술이나 기업을 비판하는 대신 구조적 조건을 지목한다. "소수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면 불투명해지고 공공 감시를 피하게 된다." AI가 경제적 자원, 전문성, 데이터 접근권을 이미 보유한 자들의 권력을 증폭시킨다는 진단이다. 민주주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 역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추가로 주어진다.
역사적 참조점은 명확하다. 레오 14세는 1891년 레오 13세의 《Rerum Novarum》을 직접 소환한다. 산업혁명이 몰고 온 권력 집중을 다룬 그 회칙은 130년이 지난 지금 AI 버전으로 다시 쓰인 셈이다. 구조가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기술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것을 통해 권력이 집중되고 민주적 통제가 잠식되는 방식은 산업자본주의 시대와 본질적으로 같다. 회칙이 호명하는 엘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나 AI 규제를 막기 위해 슈퍼PAC에 흘러들어가는 수억 달러의 자금은, 그 연속성의 현재 버전이다.
타이밍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 AI 모델 출시 전 정부 감독권을 부여했을 행정명령 서명을 연기했고, 배경에 VC 투자자이자 전직 백악관 AI 책임자 데이비드 삭스의 압력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트르담 로스쿨의 파올로 카로짜 교수 — Meta 감독위원회 의장이기도 한 그는 — AI 기반 딥페이크와 허위정보가 "진실을 인식하는 우리의 능력을 부식시켰다"며 "인지적 자유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회칙이 AI를 렌즈로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지금 이 문제들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