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I/O 2026에서 외부 기자에게 처음 만지게 한 안드로이드 XR 글래스는 오디오 전용 버전이 아니라, 렌즈 위에 Gemini 위젯을 띄우는 ‘디스플레이 포함’ 프로토타입이다. 오른쪽 프레임을 2초 누르면 시작 차임과 함께 Gemini가 깨어나고, 프로토타입에서는 같은 동작이 카메라까지 함께 켰다. 다만 출시판에서는 ‘Gemini 활성화 = 카메라 자동 시작’ 여부를 사용자가 토글로 분리할 수 있다고 한다. 첫인상부터 이 단말이 ‘착용형 LLM 컴퓨터’가 아니라 ‘폰의 시선·청각 채널 확장’이라는 걸 분명히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데모는 번역이었다. 시연자가 빠른 스페인어로 말하자 글래스가 언어를 자동 감지해 영어 자막을 렌즈에 띄우고, 동시에 Gemini가 영어로 귀에 통역해 줬다. 이 기능의 백엔드는 결국 폰의 Google Translate 앱이고, 같은 기능이 오디오 전용 글래스에서도 동작하되 자막은 폰 화면으로 빠지는 식이다. 내비도 비슷한 구조다. ‘근처 카페로 안내해줘’ 같은 모호한 명령이 폰의 Maps에서 풀리면, 글래스는 정면을 볼 때만 다음 턴을 띄우고 고개를 숙이면 파란 점이 있는 미니맵을 보여 준다. 시선이 위로 돌아오면 길은 다시 비워진다.
반면 ‘사진 찍고 인물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꿔달라’ 같은 Nano Banana 합성 시연은 폰과 서버를 왕복하느라 I/O 현장 Wi-Fi 기준 약 45초가 걸렸다. 사물 식별도 모네 복제화 앞에서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켜지지 않아 두세 번 되묻고서야 “모네 같다”는 답이 돌아왔고, 식물이나 책 속 레시피 같은 분명한 대상은 즉답이 나왔다. 디스플레이는 오른쪽 한 눈만 들어가는 단안 구성인데, 시연자는 이미지가 약간 흐릿했고 한 눈을 감으면 또렷해졌지만 짧은 체험에도 오른쪽 눈썹 위에 안정피로가 왔다고 적었다. 음악 재생도 최대 볼륨에서조차 디테일이 약했고, 이어버드 대체보다는 ‘귀를 열어둔 BGM’ 포지션에 가까웠다.
이 글래스는 Warby Parker, Gentle Monster, 삼성과의 협업으로 디자인되며, 출시판은 쓰고 벗을 때를 감지하는 센서까지 포함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토타입은 그런 출시판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비워 두고, 디스플레이가 배터리·열·시선처리에 미치는 영향을 자유롭게 실험하기 위한 ‘속이 들여다보이는’ 단말에 가깝다. 그래서 올가을 오디오 전용 글래스를 먼저 내고, 디스플레이 버전은 올해 안 트러스티드 테스터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일정은 ‘Gemini가 늦었다’의 신호가 아니라 ‘디스플레이가 아직 익지 않았다’의 자백에 가깝다. 번역과 내비처럼 폰 앱이 백엔드인 시나리오는 이미 충분히 강하고, 그 위에서 광학과 사회적 신호를 어떻게 가다듬느냐가 다음 1년의 진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