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Crunch가 정기 업데이트하는 AI 용어 사전 최신판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단어 뜻을 정리해줘서가 아닙니다. 각 항목 안에 현재 AI 업계의 갈등 구조와 권력 지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AGI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 OpenAI 정관("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대부분의 작업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고도 자율 시스템"), Google DeepMind("대부분의 인지 과제에서 인간만큼 유능한 AI"), Sam Altman("채용할 수 있는 평균적 인간 동료")이 각자 다른 정의를 씁니다. 기준이 달라지면 달성 시점이 달라지고, 규제 설계의 출발점도, 투자 내러티브도 달라집니다. AGI 선언이 기술 마일스톤이기 이전에 정치적 행위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Distillation(증류)' 항목은 더 구체적인 분쟁 지점을 보여줍니다. 큰 모델의 출력을 교사 신호로 삼아 작고 효율적인 모델을 훈련하는 이 기법은, 자사 모델끼리 적용하면 업계 표준 기술이지만 경쟁사 모델의 API 출력에 적용하면 이용약관 위반입니다. 딥시크가 OpenAI 모델을 증류했다는 의혹이 업계를 그토록 뒤흔든 기술적 배경이 이것이었고, 이 단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면 그 논란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취급됐는지 실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Fine-tuning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기원이 다릅니다. Fine-tuning은 기존 모델에 도메인 데이터를 추가 학습시키는 것이고, Distillation은 다른 모델의 출력 자체를 학습 신호로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Chain of thought(사고의 연쇄)'는 닭과 소를 합쳐 머리 40개, 다리 120개라면 각각 몇 마리냐는 식의 문제처럼, 중간 추론 단계가 필요한 질문을 AI에게 단계별로 분해해 풀게 하는 방식입니다. 강화학습으로 이 과정을 최적화한 것이 현재의 추론 모델이고, GPT-o3나 Claude extended thinking이 더 느리지만 더 정확한 이유가 바로 이 구조에 있습니다. 답을 빠르게 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맞게 내는 과정 자체를 학습시키는 것입니다.
'Compute'는 겉보기엔 단순한 연산력이라는 번역어처럼 보이지만, AI 산업에서 이 단어는 GPU·TPU·데이터센터 인프라 전체를 아우르는 권력의 코드어입니다. 이 단어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반도체 수출 통제, 에너지 소비 논쟁, 클라우드 플랫폼 과점 이슈가 함께 따라붙습니다. AI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의 상당 부분이 결국 누가 더 많은 compute를 확보하느냐는 문제로 수렴합니다. 용어를 안다는 건 그 갈등의 지형을 읽는 언어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